윤슬 너머에 있는 것, 이창동 감독의 <시>
아름다운 것만 바라보려는 우리의 시선을 붙잡아, 끝내 외면하고 싶은 현실까지 마주하게 만든다
by 인앤아웃

아름다운 윤슬 너머로 아이들이 놀고 있다. 평화롭고 한적해 보이던 풍경 속에서, 잠시 후 한 아이가 강물에 떠내려오는 소녀의 시체를 발견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병원에서 나와 딸과 통화하며, 동년배 중에는 더 큰 병을 앓는 사람도 많은데 자신은 괜찮은 편이라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미자. 그런 그녀의 옆에서는 한 여자가 혼이 나간 채 울부짖고 있다.
평화로워 보이기에 그저 평화로운 세상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조금만 시선을 돌려 보면 전혀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 이처럼 영화는 시작부터 아름다움과 참혹함, 삶과 죽음을 한 화면 안에 병치한다.

문화원 초청 강사인 김용탁 시인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사물을 '잘 봐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말하는 ‘본다’는 것은 단순히 ‘눈앞에 있는 것을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른 영역에 있다. 그는 사과를 예로 든다. 사과를 본다는 것은 단순히 사과의 생김새를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상황 속에서 사과가 가진 다양한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 수업 이후로 미자는 주변의 꽃과 나무, 과일과 풍경을 유심히 바라보며 어떻게든 세상을 ‘잘 보려고’ 노력한다.
미자는 치장하기를 즐기고, 꽃을 좋아하며, 가끔은 엉뚱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꺼내 놓는 순수한 멋쟁이 할머니다. 아름다운 것에 마음이 가는 미자에게 시를 쓴다는 것은 세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는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가 마주해야 하는 세상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미자는 손자인 종욱이 다른 남학생들과 함께 동급생 희진을 성폭행했고, 희진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모인 가해 학생들의 부모들에게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장래와 합의금이다. 대화는 곧 얼마를 마련해야 하는지, 피해자의 어머니와 어떻게 합의해야 하는지, 사건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로 흘러간다. 그들에게 희진은 어느새 자신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미자 역시 처음에는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종욱이 저지른 일을 알고도 그에게 사건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합의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딸에게 말하지도 못한다. 희진의 어머니를 직접 찾아가고서도 자신이 왜 찾아왔는지 끝내 말하지 못한다. 대신 눈앞에 떨어진 살구를 바라보며 아름다움에 관해 이야기한다. 지독한 회피형이다.

그런 미자가 시를 쓰지 못한다는 것은 흥미롭다. 시를 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어떤 사람은 “한 줄을 쓰기 시작하니 생각지도 않았던 말들이 명주실 가닥처럼 따라 나왔다”고 이야기한다. 심지어 미자가 시를 모독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음담패설을 아무렇지 않게 늘어놓는 경찰 역시 아름다운 시를 쓴다. 그렇다면 왜 누구보다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미자에게만 시가 찾아오지 않는 걸까.
어쩌면 미자는 아름다운 것을 너무 사랑했기에 오히려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시 수업에서 말한 ‘잘 본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을 골라 찾아내는 능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과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여러 상황 속의 사과를 바라봐야 하듯, 삶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면뿐만 아니라 추하고 불쾌하며 차마 보고 싶지 않은 면까지 마주해야 한다.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과 누군가의 자리에서 바라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전자의 시선에서 희진은 ‘손자가 성폭행한 여자아이’, ‘강에서 죽은 채 발견된 아이’, ‘합의해야 할 피해자’와 같은 관찰의 대상이다.
그러나 영화가 전개될수록 미자의 시선은 전자에서 후자로 옮겨간다. 희진이 다녔던 성당과 학교를 찾아가고, 그녀가 마지막으로 서 있었을 강가에도 간다. 희진은 무엇을 보았을까. 무엇을 느꼈을까.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순간에서 그녀의 눈에 세상은 어떻게 보였을까.

미자가 써낸 「아네스의 노래」는 그녀의 목소리로 시작해 희진의 목소리로 넘어가고, 카메라 역시 희진이 마지막으로 서 있었을 강가를 비춘다. 영화의 시작에서 관객들은 강물 위로 떠내려오는 희진의 시신을 바라봤지만, 마지막에는 희진이 바라보았을 풍경을 마주한다.
미자가 끝내 시를 쓸 수 있었던 이유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미자는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꽃을 보고, 나무를 보고, 과일도 봤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바라봐도 시상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용탁 시인도 사과를 잘 보라고 했지만, “사과는 역시 보는 것보다 깎아 먹는” 맛이라고. 사과를 정말 알기 위해서는 멀리서 여러 모습을 관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깎고, 입에 넣어 그 맛을 느껴야 한다. 희진의 죽음도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희진이 있었을 자리까지 가서 그녀의 삶을 느껴야 했다.
영화 역시 더 이상 죽은 희진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녀가 바라보았을 강과 하늘, 나무와 반짝이는 윤슬만을 보여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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