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인터뷰] 장항준 감독은 어떻게 천만 민심을 얻었을까?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단종을 보여주고 싶었다.”
by 장항준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의 관객수가 1600만 명을 돌파했고, 역대 흥행 2위에 올랐습니다
제 영화가 이렇게 잘될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습니까?(웃음) 사실 손익분기점인 260만 관객만 넘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초반 예매율도 낮았고, 개봉 첫날 스코어도 참담해서 어렵겠구나 생각했죠. 그런데 갑자기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더니 여기까지 와버린 거예요. 솔직히 흥행 가능성이 낮을 거라 판단했어요. 대중적인 사극이라면 보통 대규모 전투신이나 굉장한 권력 암투 같은 스펙터클한 요소가 있는데 유배 간 어린 왕을 따라가는 영화라니, 일찍이 흥행할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렇다면 이렇게 놀라운 흥행을 이어가는 이유를 생각해 보신 바가 있을까요?
굳이 제 입으로 이야기해 보자면, 있습니다.(웃음) <왕사남>은 생존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끝내 의(義)를 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보는데, 살다 보면 가까운 사이에서도 손익을 계산할 때가 있잖아요. 옳은 게 무엇인지 알면서도 잃을 게 두려워서 모른 척 지나치는 순간들이 있죠. 그런데 자신이 믿는 무언가를 지키고자 기꺼이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에게 감동하고 그들을 반갑게 느낀 게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은 있어요.
덕분에 ‘단종 앓이’를 하는 관객들도 생겼습니다. 어리고 유약한 인상의 단종을 새롭게 제시했다는 점도 중요했던 거 같습니다.
단종을 그리며 생각한 건 이거 하나였어요.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단종을 그린다. 사실 단종은 전형적인 프레임에 갇힌 인물이었어요. 사료에서는 단종이 나약하거나 유약했다는 기록이 단 한 줄도 없거든요. 실제로 문종이 죽고 단종이 즉위했을 당시 조정 대신들이 문종의 비석을 만들고자 큰 돌을 채취해야 한다고 건의하자 단종이 제지했다고 해요. 추운 겨울에 백성들이 큰 돌을 캐러 가는 건 고통스러울 테니 하지 말라고 하죠. 확실히 평범한 열두 살짜리 애는 아니었던 거예요. 단종은 조선왕조에서 몇 안 되는 적통 중의 적통이었고, 세종대왕에게도 총명함을 인정받아 가장 아끼는 세손으로 키워졌어요. 즉위 전부터 활쏘기를 잘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문무에 출중했다는 거예요. 하지만 정치적 후견인이 될 부모나 조부모가 다 세상을 떠난 상황에서 너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거죠. 그런 소신과 재능을 제대로 펴보기 전에 권력을 뺏기고 실각하게 되니까 후대에서 단종을 어린 피해자로 그리면서 보다 나약하게 그린 거죠. 그러면 역사적인 비극성을 강조하며 보다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되거든요.

반대로 엄흥도는 기록도 거의 없고, 상대적으로 상상에 의존해야 하는 부분이 상당했을 텐데요.
엄흥도는 원래 양반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몰라요. 단종의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