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냉전 시대, 상대를 적이기 이전에 인간으로 바라보는 일
진영의 거대한 무게 아래에서 한 변호사와 한 스파이가 쌓아 올린 신뢰는, 국가 이전에 직업으로서의 선택의 윤리를 보여준다.
by 김동진

누군가를 적이라 부르는 순간, 그 사람은 손쉽게 국적과 이념, 제복의 색깔로 정의된다. 우주개발 경쟁과 핵전쟁의 두려움이 공존하던 1950년대 말, 미국과 소련의 긴장이 극에 달하던 시기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스파이 브릿지>(2015)는 직업적 소명에 충실했던 뉴욕 주 변호사의 시점으로 조명한다. 끝모를 거대한 적대의 시기를 배경으로 하지만, 정작 영화가 오래 가까이 머무르는 곳은 국가 간의 전략이 아니라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다. 뉴욕을 무대로 활동하던 소련의 스파이 아벨은 미국 CIA 요원들에 의해 체포되고, 유능한 보험 전문 변호사 도노반은 미국이 공정한 재판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아벨의 형식상의 변호인으로 선임된다.

아벨의 유죄를 모두가 확신하고 그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는 상황에서, 도노반은 변호사로서 맡은 일에 충실하려 할 따름이지만 아침 출근길에도 도노반은 주변의 시선과 CIA의 감시에 시달리고, 나아가 그의 가족들까지도 위협받는 상황에 처한다. 얼핏 보기에 도노반 역시 아벨이 정말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첩보 활동을 했는지 자체보다는 다른 것들에 관심 있는 듯 보인다. 그가 주목한 가치는 '무엇이 미국을 미국일 수 있도록 하는가'다. 자신을 미행한 CIA 요원과 바에서 나누는 대화 장면, 도노반은 서로 통성명을 하던 중 자신이 아일랜드계이고 CIA 요원이 독일계임을 짚으며 서로를 미국인으로 엮어주는 것은 헌법임을 지적한다. 국가가 아무리 자신의 생존을 위해 누군가를 적대시하거나 미워할지라도, 시스템은 법과 절차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 도노반은 법이 선택적으로 작동한다면 결국 누구의 안전도 지켜낼 수 없으리라는 점을 알고 있다.
영화의 첫 장면이 음악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아벨의 일상을 관찰하는 이유도 이와 닿아 있다. 붓을 들고 자화상을 그리는 그의 모습과 미행하는 감시자들, 열차 안의 무표정한 얼굴 속에 감도는 긴장은 길거리의 소음과 사람들의 움직임, 출입문이 열고 닫히는 소리와 만나 관객에게는 서스펜스를 전하지만 이 장면에서 아벨은 스파이로 볼 만한 정황이 희박하다. 스필버그는 관객이 아벨을 소련 스파이라는 정보 내지 색깔로 먼저 판단하기 전에, 그림을 그리며 도심을 거니는 한 시민처럼 보게 한다. 체포된 후 사형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아벨은 도노반의 불안하지 않냐는 물음에 "불안해하면 달라집니까?(Would it help?)"라고 되묻는다. 짧은 대답은 아벨을 통제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도 자기 몫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는 인간으로 보이게 한다. 그는 담담히 그림 그릴 도구와 담배를 요구할 따름이다.

<스파이 브릿지>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도노반은 아벨 변론 건에 이어서 소련에 억류된 U-2 정찰기 조종사 파워스를 아벨과 교환하는 협상까지 맡게 된다. 분단된 베를린에서 동독과 소련,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협상 테이블. 그는 국가가 원하는 최소한의 성과보다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가치 자체에 골몰한다. 동독에 억류된 미국인 유학생 프라이어까지 교환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 정부와 정보기관은 비용과 우선순위를 계산하지만, 도너번은 파워스와 프라이어를 숫자로만 보지 않는다. 각자의 가족에게 돌아가야 할 이들로서 둘을 대하며, 협상가로서 자신이 할 일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이라고 믿을 따름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파이 브릿지>의 제목이 지칭하는 장소인 글리니케 다리에서의 포로 교환은 그래서 외교적 승부의 장면인 동시에, 냉전의 언어로 지워지기 이전에 존엄한 인간의 이름을 다시 불러내는 무대가 된다.
냉전 시대를 무대로 한 또 다른 영화가 최근 애플TV에 공개됐다. 적국의 군사 시설을 몰래 촬영하는 임무가 등장하는 점과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두 사람 사이에서 신뢰와 우정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을 묘사하는 대목 등 <메이데이>(2026)는 <스파이 브릿지>와 흥미롭게 비교해 볼 구석이 있는 작품이다. 1980년대 말, 비밀 임무 도중 전투기가 격추돼 소련 영토 한가운데에 고립된 미 해군 조종사 트로이는 처음 자신을 발견한 전직 KGB 요원 니콜라이를 의심한다. 니콜라이는 자신이 닉으로 불리길 원하며 <탑건>(1986)을 비롯한 미국 문화에 심취해 있음을 내보이면서 트로이에게 다가간다. 앞서 도노반과 아벨과는 달리, 트로이와 닉에게는 진진한 대화를 나눌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적진의 숲을 빠져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부상 당한 트로이와 신분이 노출될 위협에 처한 닉은 서로를 믿고 함께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메이데이>는 그 불신을 버디 액션 코미디의 리듬으로 다룬다. 트로이와 니콜라이는 서로의 언어와 문화, 농담의 방식부터 어긋난다. 그러나 위험은 두 사람이 상대 국가를 향해 품어온 고정관념보다 빠르게 다가오고, 둘의 생존의 기술은 오직 공조하는 것이다. <스파이 브릿지>에서 신뢰가 법률가의 원칙과 약속을 지키는 태도에서 출발한다면, <메이데이>에서는 함께 도망치고 서로 숨겨주며, 위기의 순간마다 상대를 내버려두지 않는 행동 속에서 나타난다. 한 작품은 협상과 외교의 언어로, 다른 한 작품은 액션과 농담의 언어로 적과의 공조를 보여주지만, 둘 다 상대를 소련인 혹은 미국인이라는 한 단어로 환원하지 않는 데서 관계가 시작된다.
두 작품은 냉전을 다루는 시대적 거리도 다르다. <스파이 브릿지>는 냉전 초기의 공포와 긴장이 개인의 일상을 장악하던 때를 배경으로 국가가 체제에 속한 개인을 어떤 방식으로 시험하는지 묻는다. 반면 <메이데이>는 냉전 말기의 1987년을 배경으로 이미 금이 가기 시작한 적대의 벽을 유머와 액션으로 가로지른다. 두 영화가 결국 도달하는 곳은 비슷하다. 공조란 상대의 세계관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같은 편이 되는 일이 아니다. 적일 가능성을 알고도 그가 살아 돌아갈 길을 함께 찾고, 필요할 때 약속을 지키며 누구도 함부로 협상의 소모품으로 남지 않게 하는 선택일 것이다.
포로를 서로 교환하는 다리는 미국과 동독,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포로와 협상가를 가르는 경계선이다. 동시에 적대하던 국가들이 서로에게 돌려주어야 할 사람들을 위해 잠시 열어둔 통로이기도 하다. <메이데이>와 <스파이 브릿지> 두 영화 모두 한 가지 사실 또는 가치를 재확인한다. 국가가 적이라고 불리는 사람조차 누군가의 가족이고, 불안해도 달라질 게 있느냐고 되묻는 품위 있는 한 사람이며, 변호사라는 직업의 소명 의식에 충실한 존재라는 사실. 그리고 냉전의 거대한 장벽 앞에서도 타자를 이념과 숫자 이전에 존엄한 인간으로 대할 수 있다는 가능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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